이홍훈 전 대법관이 오늘(11일) 오전 6시 50분 별세했습니다.

향년 75세입니다.

전북 고창 태생인 이 전 대법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 4기로 1977년 판사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냈습니다.

이 전 대법관은 정통 엘리트 법관이면서도 '법조 내 재야'로 불릴 만큼 진보·개혁 성향으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사법 정의에 중점을 두고 판단해 기본권 보호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판사 시절 이적표현물 제작·배포의 처벌과 관련한 국가보안법 조항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만 적용해야 한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급휴직원을 내고 출산을 했더라도 근로기준법상 출산휴가 2개월간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면서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호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대법관 시절에는 다양한 진보·개혁 성향의 소수 의견을 내면서 전수안·김지형·김영란·박시환 전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근로자들의 파업을 무조건 업무방해로 간주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며 단순 파업도 당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여겼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1년 4월 22일 '4대강 사업 집행정지 신청'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그가 내린 신청 기각 반대의견은 법조계에서 아직 회자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 사건 주심인 이 전 대법관은 "환경문제가 포함된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미래의 세대인 우리 자손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될 환경이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4대강 사업 중단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법관 퇴임 이후에는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과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 방안 마련을 위해 설치한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는 등 최근까지도 법조계 원로로 활동했습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모레 오전이며 장지는 전북 고창 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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