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추진하는 정부 조직 개편의 핵심 쟁점입니다. 국가 예산의 0.24%를 쓰는 초미니 부처인 걸 감안하면 관심이 대단합니다. 그만큼 우리 공동체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는 뜻일 겁니다.

인수위는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대로 여성가족부 폐지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들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 제목만 보면 인수위 결정으로 여성가족부 폐지가 확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인수위가 결정하면 여성가족부는 사라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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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성가족부 조직 개편의 전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조직 개편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시행될 수 있습니다. 즉, 여야 합의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이 과정이 핵심일 수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팩트체크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팩트체크를 지렛대 삼아 조직 개편의 지난한 과정을 시청자 분들과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인수위의 의사 결정 이후에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2008년 사례를 보면 확연해 집니다. 지금의 여가부 폐지 논란은 당시 논란과 거울상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 당시 이명박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역시 여가부 폐지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때의 조직 개편 목표는 '작지만 유능한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었고, 구체적으로는 여러 부처의 유사 기능을 통합하는 '대부처주의'였습니다. 여가부 폐지 역시 이런 목표 아래 추진됐습니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인 2007년 12월 26일 10여개의 개편안이 정부혁신・규제 개혁 TF팀(박재완 의원)에게 넘겨졌으며 이명박 당선자와 함께 본격적인 토론과정을 거쳤다. 이 중 핵심적인 조직개편안인 한반도선진화재단안, 서울대 행정대학 원안, 한나라당 태스크포스안, 안병만 전 한국외국어대총장팀안 등 4-5개 안이 이 명박 당선자에게 보고되었다. 당선인은 정부혁신TF팀에게 개편안 마련을 일임한다. - 민진, <이명박 정부의 중앙정부조직개편 사례 연구>, 한국조직학회보 vol.5, no.2, 2008년.


그렇게 인수위는 이명박 당시 당선인에게 안을 보고했습니다.


결국, 당시 인수위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합쳐서 '보건복지여성부'로 만드는 조직 개편을 확정합니다. 여성가족부의 핵심 업무인 가족, 청소년, 권익증진, 여성 업무를 사실상 보건복지부에 이관시키는 안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나라당은 인수위의 안을 참고해 정부조직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 대표 발의였습니다.

2008. 1. 21. 정부조직법 전부개정법률안(안상수의원 대표발의)
제32조(보건복지여성부) ① 보건복지여성부장관은 보건위생・방역・의정・약정・생활보호・자활지원 및 사회보장,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여성․가족 및 양성평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2008년 1월, 이명박 당시 당선인은 민주당 당사를 찾아 협조를 요청하면서 "여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통일부 폐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논란이 일었습니다. 여성 단체를 비롯해 노동 단체를 중심으로 여성가족부 존치를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공무원 노동조합도 같은 달 성명서를 발표하며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수위에서는 대국민 홍보 자료를 뿌리며 설득에 나섰습니다.

35. 여성가족부와 청소년위원회를 보건복지여성부로 통합하는 이유는?
► 서로 담을 쌓고 있던 사회복지정책 부처가 합쳐졌습니다.
- 이제는 전체 국가적인 관점에서 "태아에서 노후까지"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평생복지시스템을 갖추고
- 인력이나 복지시설 등을 통합하여 활용함으로써 예산 등 국가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36. 여성가족부가 사라져 여성의 권익향상이나 보호기능이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보건복지여성부 발족으로 여성 정책이 위축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여성정책은 피해자보호나 불평등 해소를 넘어 능력개발이나 가족복지 등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제 보건복지부와의 통합으로 선택가능한 정책수단이 많아지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다양한 정책개발이 가능하게 됩니다.
-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답으로 알아보는 정부 기능과 조직 개편>


국회 심의가 시작됐지만, 당시 민주당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통일부와 여가부 폐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 지우기 시도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당시 임기를 한 달 정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가능성까지 내비쳤습니다.

2008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춘추관 기자회견 모습. 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가부와 통일부를 없애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 국회에서 통과된 법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그야말로 발목잡기를 했다고 저에게 온갖 비난을 퍼붓겠지요. 그래서 미리 예고를 한 것이다. - 2008년 01월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기자회견


결국, 여성부는 존치하는 대신, 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넘기는 식으로 기능이 축소되는 식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가족부'로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2008년 2월 22일 정부조직법 전부개정법률안은 210명이 투표해, 찬성 164명, 반대 33명, 기권 13명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2008년에 보육 및 가족업무가 보건복지부로 이관된 후에도 여성부는 어떻게 존치될 수 있었을까? 이는 야당의 강력한 거부권 행사로 인해 가능했다. …… 대다수의 여성단체는 여성가족부의 존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야당은 통일부와 여성부의 폐지 계획에 강력히 반발했다. 여성정책담당기구가 설치된 이후 조직 개편 논쟁의 핵심 주제로 떠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시기부터 10년간 가장 역점을 두었던 사업인 통일 업무와 여성 업무를 지켜내고자 하였다. 당시 행정부 내부 관계자들도 초미니 여성부 형태를 개편의 대안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그 결과는 극적이었다. - 원시연·황인자, <중앙행정기구 조직개편의 정치: 보육, 가족정책 담당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19권2호, 2010년.

2008년 조직 개편의 교훈


2008년과 지금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비슷합니다.

옛 국민의힘인 한나라당이 여당이 될 채비를 하고 있지만, 국회 의석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 그러면서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반면, 옛 더불어민주당인 통합민주당이 다수 의석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 자연히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정부 조직 개편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눈앞에 큰 선거가 있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2008년 인수위가 조직 개편을 추진했을 때는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석 달 뒤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의 명분을 너머, 앞으로 다가올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적 계산을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 젠더 문제는 선거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고, 그 중심에 여가부 폐지 논란이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은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청년층 남성과 여성의 결집이 달리 나타났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인수위의 의사 결정, 그리고 바로 이어질 국회의 심의와 여야 협상까지, 2008년의 선례는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될 겁니다.

분명한 것은, 2008년 여가부 조직 개편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점입니다. 불과 2년 뒤, 여가부는 복지부에서 가족 업무를 재이관 받아 도로 여성가족부가 됐습니다. 2010년 3월,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다시 여성가족부가 된 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부처 간 업무 불균형으로 인한 비효율, 그리고 관료들의 업무 확보 노력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정치적 협상을 통해 여성부를 폐지할 수 없다면, 여성부를 미니부처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업무를 추가적으로 이관하여 확대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정부 내부의 논의가 수렴되어 갔고, 이에 대해 이 대통령도 동의하게 되었다. …… 여성부는 보육 및 가족업무와 더붙어 청소년 업무까지를 이관받기 위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리 마련해 두었던 내부계획을 다시 고려하기 시작했다. …… 여성부 관료와 국회 여성위원회 관계자의 업무량 확보노력이 가족업무 이관의 매우 결정적인 변수였다는 점이다. - 원시연·황인자, <중앙행정기구 조직개편의 정치: 보육, 가족정책 담당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19권2호, 2010년.


'대부처주의'라는 정치적 구호에 끼워 맞춰 기존 업무를 이 부처 저 부처에 이사시키며 기계적으로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는 방식은, 간판 값만 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남았습니다. 여가부 간판을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여가부가 하고 있는 가족 정책, 청소년 정책, 권익증진, 여성정책 업무 자체를 폐지하는 건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여성가족부 업무를 어떻게 이관할지, 또 이를 통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선명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소모적인 논란만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인수위의 의사 결정 이후 정치라는 지난한 과정이 남았지만, 협상 과정도 명분이 큰 쪽에 유리하다는 건 당연할 겁니다. 국민적 지지를 얻는 것만큼 좋은 명분은 없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모두 비슷한 생각일 거라고 믿습니다.

(인턴 : 정경은, 이민경)